🍀다영: 성공회 용산나눔의집은 용산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사회적 소수자 생활인권센터입니다. 서울시 비영리 민간단체이기도 하지만, 시작부터 지금까지 성공회 사회선교 기관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수도권에 나눔의집이 총 9군데가 있는데요, 보통 경제적 가난에 초점을 맞추는 다른 곳들과 달리 용산은 사회적가난에 주목했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초기에는 용산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 그리고 이주민 식구들과 동행했고, 2015년 자캐오 신부님이 오시면서부터는 영역이 넓어져 퀴어 길벗들과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영: 반가운 소식이네요(웃음). 저희 활동의 가장 큰 특징은 특정 의제를 정해두기보다 사람을 따라 변화한다는 점입니다.

20년 전 처음 만난 분들은 산업연수생 제도하에 있던 이주노동자들이라 임금 체불 같은 노동권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분들이 한국에 정착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시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저희의 고민도 체류 자격, 아이들의 진학이나 차별 문제 같은 생애주기별 어려움으로 옮겨갔죠. 이주민들의 삶이 변하고 정책이 변함에 따라, 저희의 활동도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다영: 최근 인도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하며 정리가 좀 됐는데요, 제가 겪은 모든 경험이 이어져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을 떠나 중국, 필리핀, 홍콩 등에서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보냈습니다.

원래는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이 있었는데, 우연히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교회를 소개한 영상을 보고 길찾는교회를 찾아오게 됐어요. 마침 그 교회가 용산나눔의집의 신앙 공동체였고, 그곳에 20년 지기 필리핀 식구들이 계셨던 거죠. 필리핀 거주 경험 덕분에 그분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져 통번역 봉사를 하게 됐는데,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저는 체류 자격이 있는 안전한 이주민이었지만, 이분들은 언제 뿌리 뽑힐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살고 계셨거든요. ‘굳이 멀리 해외로 가지 않아도, 내 이웃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저를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머리에서 종이 울리는 거창한 계시는 없었지만(웃음), 제 안의 경험과 감정들이 얽히고 설켜 자연스럽게 이 길에 서게 된 것 같아요.

🍀다영: 고향 친구를 만나면 통하는 게 있잖아요. 저도 이방인으로 살며 겪은 일들이 한국에서 거주하는 이주민들의 삶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제도적인 억압에 대한 이해가 빠릅니다. 홍콩 유학 시절, 학비가 비싸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당시 비자로는 불법이었거든요. 단속이 뜨면 숨기도 하고, 출근 안 한 날 단속반이 왔다는 얘기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어요. 그런 사소하지만 켜켜이 쌓인 경험들이 각자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다영: 나눔의집은 지역사회 가난한 이들과 동행하는 것이 정체성인데, 용산의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지난 20년 동안 7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밀리고 밀려 더 이상 용산에 머물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때, 다행히 희망씨라는 단체의 도움으로 혜화동에 둥지를 틀게 되었어요.

처음엔 의제 중심의 이름으로 바꿀까도 고민했지만, 결국 지역 기반의 정체성을 살려 용산과 혜화 지역을 모두 아우르기로 했습니다. 곧 총회를 거쳐 용산-혜화나눔의집으로 바뀔 예정인데요. 익숙한 곳을 떠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마침 혜화가 필리핀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곳이라 이곳에도 새롭게 뿌리를 내려보자는 마음입니다.

🍀다영: 미디어는 이주민을 주로 이주노동자(외노자) 아니면 다문화 가정, 두 부류로 나누는 것 같아요. 그 외에는 불법체류자라는 혐오 섞인 이름으로 부르고요. 하지만 제가 만나는 분들은 그렇게 딱 잘라 분류하기 어려워요. 그냥 우리 동네 이웃들이거든요.

찾아와서 털어놓는 고민들도 지극히 일상적입니다. “학교 알림장 앱 번역이 잘 안돼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월세가 밀렸다”, “유치원 학비가 걱정이다” 같은 것들이죠. 한국인들이 겪는 고민과 똑같은데, 국적이 다르거나 체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되다 보니 그 어려움이 훨씬 가혹하게 다가온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미디어가 삶을 너무 획일화해서 보여주는 게 아쉽고, 때로는 그게 혐오를 조장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다영: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인권기구에서도 권고한 사항인데요. 불법체류라는 말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개인의 일탈로만 볼 수 없어요. 한국에 미등록 이주민이 약 40만 명이나 되는데, 이 숫자가 단순히 개인의 잘못으로만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이분들은 한국인들이 기피하지만 우리 사회 유지에 꼭 필요한 노동을 채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입은 이 옷의 자수도 컴퓨터 기계가 24시간 돌아가야 이윤이 남는 구조라 누군가는 밤새 기계를 돌려야 해요. 식당 주방의 이모님 노동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그림자 노동을 미등록 이주민들이 감내하고 있는 겁니다.

정부도 이를 알기에 공단 지역을 샅샅이 단속하지 않아요. 다 잡아가면 당장 공장이 멈추니까요. 즉, 노동력은 필요하니 묵인하되, 신분은 불안정하게 두어 언제든 내칠 수 있게 만든 구조인 셈입니다. 이런 구조적 모순을 외면한 채 개인에게만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는 건 비겁하고 부조리하죠. 저희가 미등록 이주민이라 부르는 건, 이들이 체류 자격 없이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이들을 미등록 상태로 미끄러지게 만들고 착취하는 구조를 잊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다영: 한국 정부는 이주민을 철저히 도구로만 봅니다. 인구 절벽으로 노동력이 부족하니 데려오지만, 정주는 불허하고 청춘의 노동력만 쏙 뽑아먹고 나이 들면 이제 돌아가라고 등을 떠밀죠. 사회적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으려는 아주 비인간적인 태도입니다.

유학생 정책도 마찬가지예요. 지방대 소멸을 막겠다고 학생들을 무작정 데려오지만, 정작 졸업 후 취업할 수 있는 비자(E-7 등)는 문턱이 너무 높습니다. 합법적인 울타리 안에서 꿈을 꾸고 살 방법이 없으니, 결국 살기 위해 미등록의 길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뚜안 님도 그런 케이스였고요.

저는 솔직히 한국 정부가 이주민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비자 연장 비용, 엄청난 범칙금, 그리고 건강보험료까지요. 이주민 건강보험 재정은 엄청난 흑자거든요. 그런데도 정부는 오히려 “외국인이 건보료 혜택만 본다”며 혐오를 부추깁니다. 이렇게 이주민을 사회적 분노의 화살받이로 삼고,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폭력적인 단속을 반복하는 현실이 너무나 화가 납니다.

🍀다영: 아직 크게 무력감을 느끼진 않았어요. 당장은 답답해 보여도, 길게 보면 선배 활동가들의 투쟁 덕분에 세상이 조금씩 변해온 게 보이거든요.

뿌듯한 순간은... 아주 소소해요. 저희 이주 배경 청소년 친구들이 학교 숙제로 ‘상장 쓰기’ 같은 걸 할 때, 저한테 상장을 써서 주더라고요. 내용이 참 귀여웠어요. 거창한 성과보다는, 제가 그 친구들에게 힘들 때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 잠시라도 기댈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었구나 싶을 때. 그때 참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영: 제가 겪어보니 딱 주거 문제뿐만 아니라, 미등록 이주민이 처한 상황과 전세사기 피해자가 처한 상황이 놀랍도록 구조적으로 닮아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두 문제 모두 피해 규모가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너무 크고, 명백히 시스템적인 허점에서 비롯되었거든요. 그리고 그 구조를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정부, 은행, 악덕 임대인 등)이 존재한다는 점도 똑같고요.

은행 대출 과정을 복기해 보면 기가 막혀요. 은행은 건물이 안전한지, 집주인의 신용이 어떤지는 제대로 보지 않아요. 정부가 보증을 서주니까요. 제가 돈을 못 갚으면 정부가 은행에 원금을 대신 갚아주니 은행은 손해 볼 게 없죠. 빚은 오로지 제 몫으로 남고요. 

심지어 계약할 때 나온 대리인은 알고 보니 집주인 부부의 딸이었습니다. 저한테 “저도 선생님만 한 딸이 있어서 그 마음 안다”며 연기까지 했더라고요. 이런 사기꾼들이 판을 치는데 정부 시스템은 구멍투성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청년들이 떠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구조적으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내가 겪은 이 일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다영: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정부의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주민들이 정부를 불신해서 좋은 구제 정책이 나와도 신청을 안 했던 것처럼, 지금 청년들도 전세를 무서워서 못 가고 월세로 내몰리고 있어요.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복불복으로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있으니까 정책을 믿지 않는 거죠.

신뢰를 회복하려면 정부가 책상 위 통계나 여론만 볼 게 아니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제도를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회 분위기가 좀 걱정스러워요. 10.29 참사 이후, 사람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거든요. 아이돌 콘서트에서 사진 찍으려고 잠깐 모인 것조차 해산시킬 정도니까요.

공동체가 해체되고 각자도생을 강요받는 건 위험한 신호입니다. 당사자들이 안전하게 모여 목소리를 낼 권리가 보장되고, 그 목소리가 실제 제도에 반영될 때 비로소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다영: 저는 모태신앙 천주교인으로 시작해 여러 교회를 거쳤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게 중요한 건 어떤 교파냐가 아니라 크리스천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크리스천은 예수님이 걸었던 길을 재현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혐오하는 분이 아니셨어요. 당시에 천대받던 세리, 이방인, 사회적 소수자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환대하셨죠. 크리스천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교회들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경우가 많아요. 교회 다닌다고 하면 좋은 분이 아니라 조심해야 할 사람으로 여겨지는 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제가 지금 길찾는교회와 용산나눔의집에 머무는 이유는, 이곳이 제 신앙과 삶을 일치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일요일에만 교회 가서 “하나님 만났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소수자와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잇는 것. 조금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웃음), 저는 그게 진짜 선교이자 크리스천의 본분이라고 믿습니다.

🍀다영: 아주 현실적인 제안 두 가지를 드리고 싶어요.

첫째는 기부입니다. 사실 한국 사회가 기부에 좀 인색한 편인데, 기부는 습관이거든요. 교회 헌금하듯이 우리 주변의 가난한 이웃, 이방인 취급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단체에 후원하는 습관을 들여보시면 어떨까요? 내 돈이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그 이슈에 관심도 생기게 되니까요.

둘째는 댓글(선플) 달기입니다. 이거 정말 중요합니다.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여론, 즉 민원과 댓글이거든요. 혐오 세력은 아주 집요하게 악플을 다는데, 우리 쪽 분들은 피로감을 느껴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 EBS 다큐멘터리 <시민 미완: 경계의 청년들>에 이주 배경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댓글 창이 정말 살벌했어요.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혐오 발언이 쏟아졌죠. 출연했던 친구들이 큰 용기를 내서 나왔다가 그 댓글들을 보고 상처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그 수많은 악플 틈에 섞여 있던 따뜻한 응원의 댓글과 DM이었어요. 목소리 내줘서 고맙다는 그 한마디 덕분에 힘을 얻더라고요.

온라인 공간이 참 험하지만, 그곳에서 선플 하나 남겨주시는 것. 비록 수가 적더라도 당사자들에게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정말 큰 힘이 됩니다.